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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 Savoir" by Jacques Rivette

작성자
최영진
작성일
2003.04.30
첨부파일0
조회수
875
내용
문학과 영상학회 웹페이지에 처음으로 글을 올림니다. 제가 이전에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 올렸던 글을 한번 올려봄니다. 영화를 보고 집에와서 막 쓴 글이라서 매우 거친 느낌이 있지만, 여러분과 함께 저의 그때 느낌을 나누고 싶어서 별다른 수정없이 옮겨놓았습니다. 즐독하시길.
"Va Savoir" by Jacques Rivette
헤어졌던 남자를 만난후 방황의 늪으로 빠져드는 한 여자 연극배우의 이야기.
그 여자의 방황을 지켜보면서 어느날 자신앞에 나타난 아리따운 아가씨에게 자꾸만 빠져드는 한 연극 배우겸 연출가의 이야기.
끝낼것 같지않은 박사학위 논문(하이데거의 철학사상)과 씨름하면서 자신앞에 다시 나타난 옛사랑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못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관념의 극단을 달리는 철학자 남편을 두었지만, 요가와 명상을 즐기며 꼬마들에게 무용을 가르치며 살아가는 한 여자의 이야기.
그외에도,
도박에 빠져서 집안에 있는 고서들을 하나씩 내다파는 젊은 빠리건달 이야기.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이 현대 이탈리아와 미국 헐리우드 영화에 미친 영향을 공부하던중 우연히 만난 연극연출가와 사랑에 빠져드는 도발적인 빠리 아가씨 이야기.
쟈끄 리베의 2001년 작품 Va Savoir (영어 타이틀은 Who Knows?)는 위에서 언급한 이야기들을 긴 호흡과 리듬으로 엮어나가는 한편의 로맨틱 코메디이다. 영화는 이탈리아의 한 극단이 빠리로 와서 2주간 공연하기로 예정된 피란델로 작 "Come Tu Mi Vuoi"("As You Desire Me")의 간단한 리허설 장면으로 시작된다. 리허설에서 첫공연이 이루어지는 장면까지 극단의 주연 여배우 Camille은 몹시 초조하다. 자신이 정말 이 공연을 해낼수 있는지에 대해서 거울앞에서 그녀는 수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윽고 카메라가 첫 공연이 벌어지는 극장내부를 무대와 객석사이를 이리저리 옮겨다니면서 잡아나간다. 여기서 카메라의 움직임이 심상치않다. 왜냐하면 카메라의 작업이 무대위의 공면장면을 온전히 전달하기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무대위에 서있는 누군가가 자꾸 무대바깥 즉 객석을 기웃거리는듯한 느낌을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특히 주연 여배우 까밀이 연기실수를 한 후의 장면에서 카메라가 서있는 사람의 눈높이 위치에서 객석에 앉은 관객들을 비출때, 이 카메라의 시선은 누군가 멍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을때의 상태와 비슷한 느낌을 던져준다. 영화속의 첫번째 문제가 제기되는 순간이다.
까밀은 이 공연으로 인해 다시 찾기전까지 빠리를 2년정도 떠나있었지만 본래는 이곳 출신의 프랑스 여자이다. 그녀가 빠리를 떠나게된 이유는 아마도 같이 살던 남자와 헤어졌기 때문인것으로 짐작된다. 그녀가 첫공연전에 보여주었던 초조함과 첫공연후의 참담한 실패감은 모두 지금껏 그녀의 머릿속을 죄고있었던 과거 남자에 대한 어떤 강박관념을 확인하는 과정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녀는 그 남자를 만나러간다. 그러나 정작 그녀가 남자의 아파트에서 만나게되는 사람은 그 남자의 아내이다. 이제는 결혼한 유부남. 하이데거에 심취한 철학자. 그래서 로맨틱해보이지만 현실을 지옥처럼 느끼고사는 이상주의자. 매력적인 연극배우 까밀이 다시 이 남자에게 미련을 느낄 이유는 거의 없어보인다. 그러나... 까밀과 이 하이데거 철학자 Pierre의 재회는 이후에 전개될 영화 스토리를 매우 복잡하게 만들어놓는다.
까밀과 함께 살고있는 현재의 남자 Ugo는 이태리 출생이며, 까밀이 속한 극단의 단장이자 연출가이자 주연배우이다. 빠리에 머무는 동안 그의 관심사는 18세기 이탈리아 극작가 Goldini라는 사람이 썼다고 전해져내려오는 미완성 작품 하나를 찾아보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극작가의 개인자료들을 모두 보관하고있는 후손의 집을 알아내게되고, 그 집 딸(Do)의 도움으로 틈나는대로 계속 서가의 자료를 뒤진다. 그 와중에 까밀과 전 남자의 관계를 의심하게되는 사건들이 일어나고,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이 매력적인 아가씨 Do와 바람을 피우기 일보직전까지 간다.
영화는 Pierre의 아내 Sonia와 Goldini 후손 집의 아들인 Arthur의 이야기까지 끌어들이면서 뒤엉켜들어간다. 중반이후로 접어들때까지 우리는 서로 뒤엉켜들어가는 관계들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속에 휩싸여있게된다. 도저히 결말이 예측되질 않는 상황의 연속이다. 만약에 잉그마르 베르히만이 감독이었다면 이 지점에서 어떤 섬뜩한 비극적 상황으로 방향타를 잡았을 것이다. 에릭 로머가 감독이었다면 현실의 관계를 다 깨부수고서 욕망을 현실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자끄 리베는 전통적인 코메디의 플롯 전개방식을 도입하여 사건들을 해결한다. 영화의 전반부를 통해 긴장을 형성했던 모든 요소들은 코메디의 반전과 아이러니를 위한 요소들로 그 기능이 바뀐다. 예를 들자면, Arthur는 주로 유부녀를 상대로 사랑 놀음을 벌이면서 값나가는 귀금속 장식물들을 가짜와 바꿔치기하는 것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인물인데, 그가 까밀에게 사랑을 느끼고 진심으로 빠져들때 까밀은 그가 보이는 진심을 이용해서 Sonia가 잃어버린 보석을 되찾아준다. 진짜 사랑과 가짜 사랑이 아이러니컬하게 엇갈리는 장면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코메디적 반전의 절정은 까밀의 현재 남자 Ugo와 과거 남자 Pierre가 극장 천장에서 벌이는 사랑의 결투(duel)장면이다. 마치 외나무 다리의 결투를 벌이듯 두 사람은 조명을 설치하는 천장 난간에 마주서서 보드카를 한병씩 마신다. 먼저 취해서 중심을 잃고 난간 밑으로 떨어지는 자가 결투에서 지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재래식 결투에서는 총을 쓰기 때문에 반드시 한 사람이 죽게되어 있고 살아남은 자가 여자를 차지하게된다. 이 영화에서 쓰인 극장 천정 난간에서의 결투 역시 떨어지는 자는 곧 즉사하기때문에 전통적인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 총대신 보드카를 쓰는 것이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하이데거 철학자는 술에 만취되어 독일어로 무어라 무어라 떠들다가 중심을 잃고 천정에서 떨어진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코메디적 분위기로 돌아서는 전환점이 바로 여기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천정에서 떨어진 철학자가 바닥위로 설치된 안정망위에서 몸을 가누지못하고 횡설수설대고 있는 상황을 바로 다음 장면에서 목격하기 때문이다.
극장이라는 공간은 이 영화에서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역할을 한다. 피란델로의 극 공연 장면들은 짤막하게 계속해서 영화 중간중간에 나열되는데, 극중의 욕망과 갈등은 현실의 욕망과 갈등으로 투영되는 관계(혹은 그 반대의 관계)를 표현한다. 또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극장은 여태까지 서로 엇갈려서 전개된 모든 사랑관계들을 본래의 관계들로 복귀시키는 현실속의 희극적 공간이기도 하다.
Va Savoir는 자끄 리베의 영화중 내가 두번째로 본 작품이다. 첫번째는 영어제목이 Beautiful Annoyance라는 영화였는데, 화가의 이야기를 다룬 내용이었다. 그 영화에서든 이 영화에서든 한가지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감독이 결코 스토리 전개에 급급하지않고서 길고 여유있는 호흡으로 각 장면을 만들어간다는 점이다. 이 영화가 이야기를 시간의 흐름에 맞춰 현재진행형으로 전개시키고, 따라서 어떤 플래쉬백이나 환상적인 요소들에도 기대질 않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도, 각 장면들속에 베어있는 리듬의 안정감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일전에 읽은 신문 영화평에서는 Camille역을 맡은 Jeanne Balibar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는데, 그녀에 덧붙여서 나는 그녀의 남자인 Ugo 역으로 나오는 Sergio Casellitto의 연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특히 그의 무심한듯 보이면서도 선이 굵은 표정연기는 까밀의 감성적 연기와 더불어 이 영화를 보는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최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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